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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치욕의 죄악사[정바울 목사] 2020-09-17 185,551

LQCWUZQHZ1F45TNY7VUI.jpg글 : 정바울 박사
한국교회기독교영성총연합회(UCSC)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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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미소기바라이를 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최덕성교수



우리는 다윗이 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는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는 살인자였고 간통죄를 지었으며 때로 거짓말을 하고 비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윗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정직한 심령을 토로하며 회개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옳은 길로 돌이켰다.

[시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눈과 귀를 가릴 수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말, 생각, 중심을 다 알고 계신다. [시139:1-10]

한국 교회의 역사를 보면 그리 길지 않지만 무척 수려한 발전과 성장을 해온 것을 볼 수 있다. 20세기 초, 세계 16곳에서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었다.

그리고 일본 침략과 해방, 6·25 전쟁과 분단, 격동하는 현대의 역사 속에서도 한국 교회는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이 화려함 뒤에 한국 교회가 아직 하나님 앞에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를 품고 나아가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부인하고 싶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죄의 문제를 다 해결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므로 완전 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로우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 인간적인 연약함을 합리화하는 죄가 가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판단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 과거의 역사가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적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또한 교회의 이러한 범죄는 우리 사회에 해결되지 않는 역사적 범죄와 죄악들의 근간이 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교단이나 교파, 혹은 목회자를 비판하고 정죄하기 위해 이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실한 회개와 치욕적인 과거 기독교 역사의 청산이 있어야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부흥의 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 부흥의 대추수를 준비하는 나라로 우리 나라를 세우셨다. 부흥의 세대로 준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사랑의 회복과 성결의 능력’이다.

앞으로의 세대는 탐욕과 음란의 세대가 될 것이다. 사랑이 식어지고 더 힘들고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이다. 한국 교회는 말씀 안에서 이 마지막 때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준비해야 한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과거의 죄악을 회개하고 서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한다.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이 작업은 반드시 꼭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해결 받지 못한 죄는 무엇인가?
우리 나라에는 가슴 아픈 과거사가 있다.

일본의 침략과 남북의 분열,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 분단의 아픔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교회 최대의 위기는 바로 신사참배를 앞둔 시점에서부터 시작 된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 역사 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역사까지도 좌지우지 한 절대적인 사건이 되었다.

일제 식민의 초기, 많은 교회들과 기독교 학교는 신사참배를 강렬히 거부했다. 하지만 일제의 통치 기간이 30여년을 넘어가면서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변질되어 갔고, 나중에는 교단 차원에서 신사참배에 적극 동참하는 열성까지 보였다.

물론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 침략 초기였다. 일제 침략 말기로 갈수록 교회의 친일 행각은 극에 달했다.

1937년 일본은 모든 조선의 기독 학교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명령했다. 그리고 1938년, 일본은 ‘교회는 예배를 드리기 전 신사 참배를 먼저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즉 예배 시작 전에 일본신에게 먼저 참배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신사가 없는 마을에서는 교회 마당에 모여서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처음에 많은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임을 강조했고,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강도 높은 일본의 탄압과 위협으로 대다수의 교회 지도자들과 일부 선교사들이 신사참배를 일종의 ‘문화 의식’으로 규정하였고 결국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 성도들이 신사참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1938년 2월, 평북 노회는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닌 ‘국가 의식’임을 인정한다는 결의를 했고, 4월에는 감리교 유형기 목사를 비롯한 각 교단 대표들이 모여 신사참배에 동참할 것을 결의했다.

6월에는 전북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또한 같은 해 9월 장로교는,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가 아니며 일본의 신민(臣民)된 의무로 행하는 의식일 뿐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1938년 제 27회 장로교 총회 안건으로 신사참배안이 채택되었는데, 여기서 총회장 목사는 일본 헌병과 경찰들 앞에서 ‘신사참배는 종교 의식이 아닌 국민 의례이므로 교회가 참여해도 좋다’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후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신사참배에 결의했다.

1939년 열린 제28회 장로교 총회에서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예수교 장로회 연맹’을 결성하고 일본의 광적인 침탈전쟁을 위해 기도운동과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조직은 훗날 총독부와 결탁하여 독립운동가를 색출, 고발, 고문하는데 일조를 했다.

또한 홍택기, 박응월, 박임현, 길인섭, 윤하영, 윤치호, 박희도, 양주삼, 신흥우, 남종기, 박규호 장로, 갈홍기, 정춘수, 양주삼, 정인과, 전필순, 김길창 목사를 비롯한 많은 교단과 거물급 기독교 지도자들이 교인의 황민화 운동, 신사참배 운동, 민족정신 말살운동에 앞장섰고,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목사와 교인을 탄압하는데 동참했다.

그리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 활동을 펼쳤던 많은 선교사들이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라고 반대했지만, 일부 선교사들은 조선의 교회들과 함께 신사참배에 동참했다.

더 충격적인 일은 당시 목사님들이 일본 중들이 행하던 불교 세례 즉, 불교에서 물을 뿌려 세례를 주는‘미소기 바라이’라는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 미소기 바라이는 강과 바다 등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졌는데, 한국 교회 목사들은 일본 불교 중들에 의해 행해진 이 예식을 단체로 행했다.

이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배교의 행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교회는 일제의 조상신을 향해 절을 했으며, 일본 태양 여신과 교접한 천황을 신성시하며 예배했다.

또한 교회는 이를 성도들에게도 강요했다.

이로써 조선의 교회와 선교사들은 그들의 영적 권위를 일본의 태양 여신에게 넘겨 주었고, 많은 선교사들은 조선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신사참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에 해당하는 죄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20:3-5]

한국 교회는 흑암의 세력에게 교회의 권위를 넘겨 주었고, 사단은 합법적으로 자신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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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938년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신사참배 결의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총회 이후 찍은 임원진 기념사진이다. 앞줄 중앙에 홍택기 목사, 그 오른쪽이 김길창 목사이다.
우상숭배의 대가로 받은 "은전(가롯 유다의 은전)"을 헤아리던 자들이며,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목사들을 이단이라고 했던 자들이다. 사진제공 : 김응호 선생
 

 

 

▲ 북한의 교회
1945년 8월 15일 독립이 된 즉시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양분화 되었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남한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 단지 북한의 김일성과 미국에 의해서 이 협정은 이루어졌다.

북한과 평양을 고스란히 사단의 세력에게 넘겨준 후, 북한에서의 기독교 탄압은 극에 달했다. 김일성은 1960년부터 대대적인 사상 조사를 실시했고, 그중 가장 뚜렷한 표적이 되는 이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물론 그들은 숙청되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생명을 내어 던지며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나갔다.

북한의 기독교 탄압은 참혹한 방법으로 자행되었고, 많은 순교자의 피가 북한에 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숨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북한의 지하 교회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들은 지금도 생명을 걸고 지하 교회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남한의 교회
신사참배 문제로 투옥되었던 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풀려나자 그들은 교회의 우상 숭배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중심축이 될 수 없었다.

그전부터 교권을 잡고 있었던 친일 인사들과 교계지도자들이 이미 교회의 중추세력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회피하였다.

그후 교회는 여러 차례 신사참배의 문제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교회의 신사참배에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한 목회자, 선교사, 장로들의 진정한 공적 회개도 없이, 예수님의 속죄 은혜를 빌미로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 했으며, 심지어 자신들도 시대의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더욱 기막힌 일은 친일파 인사들이 광복 후에도 한국 교회의 교권을 장악하고 교회를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방패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죄악은 국가적인 죄악의 과거사를 그대로 방치하게 만들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만 되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친일 인사들의 청산 문제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사회의 요직을 점령하고 정치, 경제, 사회의 곳곳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 자유당 12년 집권 기간동안 친일 인사들은 약 1/3에 달했다. 또한 최근까지만해도 친일인사와 애국 지사 후손 사이에 땅 소송문제가 이슈가 되었었다.

교회의 청산되지 않은 죄악은 현 사회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 교회는 신사참배의 문제로 쟁론에 들어갔다. 남한 교회는 마음을 하나로 하여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눈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잘못을 비방하고 다투며 1950년까지 5년동안 싸우기에 이르렀고, 그야말로 교회는 분열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우상 숭배가 낳은 씨가 싹을 틔운 것이다.

이 다툼은 1950년 4월 대구 제일 교회에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46회 총회를 통해 극에 달했는데, 신사참배를 자행한 목사들은 ‘우리도 양떼를 흩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수고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고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 했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들은 ‘너희는 회개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국 신학 대학의 창립자였던 김재준 박사가 ‘자유주의다, 아니다’하는 문제 때문에 서로 시비가 붙었고, 급기야 서로 자기 주장을 하기 위해 강단으로 몰려 나온 사람들은 성찬상을 뒤집어 엎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교회 안에서 이 일이 있은 후 약 2개월 후,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임시 정부는 부산으로 옮겨가고,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목사님들에게 ‘나라를 위해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라는 통지를 했다.

이 때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영적 순결을 지킨 고신파가 갈라져 나가게 되는데, 장로회 총회측과 고신파는 서로를 비방하며 또다시 공산당이다 아니다 하는 문제로 다투며 분열된 교회의 모습을 보였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교회는 하나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분열된 교회가 영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여러 신학자들과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주남선, 손양원 등 출옥 목회자, 성도들은 동족 상잔의 비극이 교회의 우상 숭배 죄악과 미움과 다툼, 분열로 일관한 교회의 죄악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분단의 역사는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교회의 우상숭배와 분열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6·25 전쟁 이후 한국 교회는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

6·25의 폐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도우실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 뿐임을 인정하며 속속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헌신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상처 받은 많은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또 한차례 하나님 앞에 중한 죄를 범하게 된다. 1959년 대전에서 열린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다시 ‘공산당’에 대한 문제로 두 파가 나뉘어 싸움을 하다가 다시 성찬상을 뒤집어 엎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또다시 분열된 모습과 정죄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총회는 시작도 못하였고, 그 일이 있은 몇달 후 4.19와 5.16 사건이 일어나 전국은 또 한차례 피로 물들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1979년 9월에 있었던 성회에서 또 발생했는데 성찬상을 뒤엎는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게 된다. 한 달이 못되어 10.26과 5.18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교회는 자꾸만 분열과 다툼, 미움으로 일관된 모습으로 세상에 비추어 졌다.

그러나 이런 역사 속에서도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고, 1960년대 강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놀라운 대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갈급한 영혼들이 몰려와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다. 교회에 급하고 강한 성령이 불같이 임하고, 수많은 회심자들이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자 목회자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을 제지하며,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표면적 성장을 계속해서 이루어 나갔다.

표면적 성장이라고 밖에 명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비해 교회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은 최하위였기 때문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는 곧바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고, 당시 경제 성장에 힘입어 교회의 부피는 커져갔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기독교 국가라는 타이틀 아래 부정부패, 군사 독재, 금권 선거, 성범죄, 사기, 폭력, 인권 유린, 빈부 격차, 윤리 의식의 부재, 자살이라는 부분에서 상위를 달리는 아이러니한 사회를 만들기 이르렀다.

우리 나라 교회는 그들이 제시하는 복음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 주는 상태까지 전락해 있다.

한국일보사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일반 불신자들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았다.

(1) 기독교인은 더 애국적인가?
-> 아니다
(2) 기독교인은 더 양심적인가?
-> 아니다
(3) 교회가 더 많아지기를 원하는가?
-> 아니다

또한 90년대 이른바 ‘옷 로비 사건’을 비롯해 이단 파문 문제, 북풍 사건, 한국 최고 교회 목회자들의 비리 혐의 연루, 성추행 사건, 5·6공 독재 정치권과 연루된 비리 기독교인, 무분별한 이단 정죄로 서로 싸우고 죽이는 모습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를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사회 정화 능력을 상실한 채 기업화되어가고 부피 키우기에 급급한 교회들을 보며 많은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마음과 생각을 닫아 버렸다.

현재 한국 교회는 사회를 정화시키고 비전과 소망을 제시할 영적, 도덕적, 사회적 역량이 없다. 한국 교회의 성장을 비약적 성장이 아닌 비만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뜻과 비전을 펼칠만한 영권을 상실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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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1941년 조선예수교장로회 K노회 소속 장로교 목사들이 "천조대신 외에는 참 하나님이 없다"고 신앙 고백을 하며 '미소기 바라이'(신도침례)를 집단적으로 행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념촬영한 사진.
기독교에서 행하는 침례(히6:2)는 받지 않으면서 신사참배하는 조선예수교장로회 목사들이 잡신(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 일본 불교 중들에 의해 집행되는 '미소기 바라이'를 단체로 행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사진 제공 : 최덕성 교수

 

 

1992년 4월 29일 독일의 베를린에서 템플턴 상 수상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종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을 받은 주인공은 한국의 한경직 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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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트리뷴 기사


그리고 같은 해 6월 1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한경직 목사 템플턴 상 수상 축하 예배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서 한경직 목사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게 된다.

자신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행했으나 지금까지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반세기 전에 지은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한다고 고백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경직 목사의 고백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오랫동안 묵인된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의 문제가 템플턴 상을 수상한 목사로부터 공개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한경직 목사의 공개적인 자백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반 세기 동안 교회를 이끌어 온 많은 교계 지도자들 중에서 신사참배에 동참했던 대부분 목회자들이 우상 숭배의 죄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교회를 섬겨왔다는 것을 확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 회개를 통해 죄의 사함을 받을 은밀한 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경직 목사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은, 신사참배의 문제가 단순히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의 회복으로 가볍게 끝낼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신사참배는 교회가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죄의 문제라는 것이다.

죄에 대한 책임이 집단적으로 나타는 경우가 성경에는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감으로 여리고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 단계로 정복할 성은 아이성이었다. 아이성은 여리고 성보다 훨씬 작은 성이었기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뜻대로 순종하여 나갈 때 반드시 승리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패배의 충격 속에서 눈물로 간구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아간의 범죄를 공개하셨다.

하나님께서 단 한사람, 아간의 범죄를 그토록 강력하게 다루신 것은 왜일까?

이스라엘은 전 민족이 출애굽한 후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 새로운 부흥의 뿌리를 내릴 중요한 시점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작, 부흥의 시작을 앞두고 민족 전체의 성결을 원하셨다.

‘나만 잘하면 다 잘 되겠지’. ‘나 하나 쯤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은 통용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수7:13]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모든 족속의 회개와 성결을 원하셨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가증한 물건을 다 돌로 치고 불로 태워 그들 중의 죄악을 없앴다.

아간의 사건은 많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며, 하나님 앞에 죄가 해결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시는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엄중한 경고를 하셨다.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는 말씀이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를 둘러싼 교회와 목사, 성도들의 죄가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신앙 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덮어두었거나, 언급을 회피하며 그 죄의 심각성에 대해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또한 장로교 제39회 총회에서는 신사참배에 대한 문제를 잠깐 다룬적이 있지만, 한경직 목사의 이 고백은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청산되지 않는 문제가 교회내에 뿌리깊게 내려있음을 의미한다.

죄를 방치한 채로 달려온 한국 교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신사참배로 인해 우리 교회가 잃어버린 영권은 남북의 분열, 교회와 국가 내에서의 동서의 분열, 교단 내에서 분열, 수 많은 교단과 교파가 나뉘는 분열의 역사를 초래하게 만들었다.

또한 친일 인사들은 해방 후에도 계속 교계의 요직에 올라앉아 우상 숭배에 대해 합리화하는 교묘한 발언들을 하며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

회개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독선이니 정죄니 라는 말로 그냥 넘겨버렸다. 때로는 일제 하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순교자들을 싸잡아 광신자로 취급하기도 하였고, 신사참배에 저항하다가 투옥된 목회자와 성도를 교회의 조직을 무너뜨리고 갈려나간 교회 분열의 원인 제공자로 말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전세계에 놀라운 성령의 불이 임하는 곳마다 특징적으로 선두 되었던 것은 회개의 역사였다.

그것은 세계적인 추세였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가 그토록 사모하고 원하는 부흥은 어떻게 올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선, 교회 전체의 죄의 회개와 성결의 작업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교회사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은 길선주 장로가 공적으로 죄를 자백함으로 시작이 되었고, 그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대각성을 일으키며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회개와 부흥운동이 계속되었고, 신사참배 이전 조선의 교회에는 회개와 성결의 불이 타올라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한 이후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가장 심각한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다.

무엇보다도 지금 한국 교회에는 가증한 우상 숭배에 대한 과거의 죄를 교회 전체가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하는 것은, 단순히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절차가 아닌, 하나님 앞에 눈물로 진실하게 죄를 회개하고 거룩과 성결의 옷을 다시 입음으로, 서로에 대한 상처를 용서하고 서로 기만했던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로 다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5:9-10].

과거 조상들이 저지른 죄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 신사참배를 한 교단이 내가 속한 교단이 아니라고 해서 나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우리는 한국 교회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이다. 그들의 회개치 않은 죄가 삼 사대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과거 신사참배를 행하고 우상숭배를 했던 자들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고, 대부분의 한국 교회 성도들이 진정한 회개가 없었던 자들로부터 설교를 듣고, 침례(세례)를 받았고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더욱이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 앞에 목사, 장로, 감독, 집사...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담의 죄가 지금의 세대까지 이른 것처럼, 회개가 없다면 우리에게 조상의 죄악은 유전되어 올 수 밖에 없다.

과거 영적 범죄에 대한 무감증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 곳곳에 죄의 무감각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세계 최대 교회 성장과 각종 범죄 세계 최고라는 아이러니한 사회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성찬상을 뒤엎고 교회 내에서 서로 분쟁하며 욕하고 난장판을 만들며 몸싸움하는 모습은 부끄럽게도 오늘날의 국회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
우리는 과거 불의와 타협하고 신사참배를 행했던 모든 죄에 대하여 교회 전체가 회개해야 한다. 신사참배와 우상숭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저질렀던 다툼과 분열, 미움, 증오, 음란, 살인, 집단 이기주의, 독선, 정죄의 모든 죄악들을 다 회개해야 한다.

신사참배에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모든 교단, 목회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또한 함께 신사참배에 동참했던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도 회개해야 한다.

또한 반세기가 넘도록 신사참배의 죄를 은폐하고 자신들의 교단과 노회를 재건하고 세를 확장시키는데 눈이 멀었던 죄, 교회의 분리·분열에 앞장 섰던 죄, 정권 유착의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한다.

지금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묵묵하게 섬기는 많은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있다.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킨 많은 순교자들이 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투옥되면서까지 믿음을 지킨 알려지지 않은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었다.


또한 6.25의 전란 중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했던 교회와 목회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나라를 사랑하신다. 또한 한국의 목사님들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는 열정이 강한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진노중에라도 우리를 향한 긍휼을 잊지 않은 것은, 이처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기도했던 숨겨진 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전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대부흥과 대추수의 역사속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아간과 아간이 저지른 가증한 죄악’을 없애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말고 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부흥을 준비하며, 나아가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세대로 일어나기 위해 먼저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목회자들이 달라져야 한다. 교회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햫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성결한 주님의 백성들로 일어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진리의 길을 따라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남북 문제와 같은 큰 사안들이 있지만, 그 역시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정직하게 순종하며 나가야 한다. 다니엘과 같이  통회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한다! 

 

<크리스찬트리뷴 2004년 8월 1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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